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면서
"엄마 사랑해" 하고 말을 하다가
뭉치를 한참 동안 바라본다.
그러다가 알쏭달쏭한 얼굴로
"엄마, 뭉치 엄마는 어디 있어요?" 하고 물어본다.
"응. 뭉치 엄마는 뭉치 엄마네 있지."
"그럼, 뭉치 엄마네는 노르웨이에 있어요?"
(정말 노르웨이는 기억을 또렷하게 한다. ^^)
"아, 그런 건 아니고 뭉치 엄마네도 한국이야."
"뭉치가 노르웨이에서 온 거 아니야?"
"아... 그럼 뭉치 할아버지 할머니네 집이 노르웨이야?"
"음... 그건 확실하진 않은데
뭉치 할아버지의 아빠, 그 아빠의 아빠, 그 아빠의 아빠집이
노르웨이에 있을 것 같아."
"아, 좀 어렵다." 하더니 대화가 멈췄다.
막상 아이한테 대답을 하려니
'노르웨이의 숲'의 기원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고,
'고양이'의 시작에 대해서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고양이의 조상과 시조에 대해서 찾아보았다.
고양이는 5300만년 전부터 6000만년 전
모든 육식동물의 선조인 1) 크레오돈트(Creodonts)에서 진화했으며
크레오돈트 중 일부가 진화한 2) 미아키스(Miacids, 미아시드라고도 불리움)가 탄생했고,
이 미아키스로부터 진화한 고양이과 동물이 처음 등장한 것은 약 4천만 년 전이라고 한다.
약 2천만 년 전, 전문가들이 오늘날 고양이과 동물의 전형으로 간주하는
3) 프레우데루러스(Pseudaelurus)가 나타났다.
다시 이들 중 일부가 진화하여 1200만 년 전,
마텔리 살쾡이(Martelli's Wild Cat)라 불리우는 4) 펠리스 루넨시스가
유럽지역에 등장하게 되고, 이후 800만 년 전부터 1200만 년 전 사이에
점점 더 현대적인 고양이의 모습을 갖춘 형태로 진화하게 되었다.
그리고, 약 3만년 전 오늘날의 집고양이(domestic cat)와 크게 다르지 않는
5) 펠리스 실베스트리스 종이 최초로 출현하였다.
![]() |
Felis Silvestris |
이들로부터 오늘날의 집고양이가 탄생하게 되었고,
이들은 아프리카 살쾡이(Felis silvestris lybica), 유럽살쾡이(Felis silvestiris silvestris),
아시아 살쾡이(Felis silvestris ornata) 세 가지 종으로 나뉜다.
이 중 아프리카 살쾡이(혹은 아프리카들고양이라고도 불리움)가
길들여진 고양이인 집고양이의 직계조상으로,
약 1만년 전 근동지방에서 스스로 숲속을 나와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에
대담하게 정착하여 길들여진 5마리 정도의 아프리카들고양이가
집고양이의 기원이라고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사람과 함께 지내게 된 집고양이는
지금으로부터 약 5~6천년 전 고대 이집트에서 기르던
'리비아산 야생 고양이'가 길들여지면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곡물 창고의 쥐를 퇴치하기 위해서
야생 고양이를 기르기 시작한 것이었고, 이렇게 길러진 고양이들이
상인들을 통해 유럽, 인도, 동남아시아 쪽으로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집고양이가 과연 길들여진 건지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
고양이가 개처럼 훈련을 받아서 집고양이가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길들여졌다기보다 자신의 사냥 본능에 충실하면서
사람과 함께 공존하고 같이 지냈다는 게 맞지 않을까?
고양이들에게 쥐는 맛있는 먹이이자 사냥의 대상이고
그 쥐들이 많은 곡물창고로 자연스럽게 왔다고 한 것이 맞는 것 같다.
이집트인들이 주는 먹이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
우리집 뭉치랑 꼬리를 봐도
사람인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뜻대로 고양이들이 변하는 것 같지는 않다.
원래 뭉치가 타고난 기질이 그대로인 게 틀림없다.
우리집에는 곡물창고 비슷한 것도 없어서
뭉치가 쥐를 잡아줄 일은 없지만,
움직이는 쥐 장난감이나 레이저 빛을 보고서
배를 깔고 있다가도 포복 자세로 금새 바꾸고, 확 뛰어올라 덮치는 기술은
우리집에 오기 전 뭉치가 엄마한테 배울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나나 뭉치아빠가 가르쳐 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스크레치 폴(pole)을 마구마구 뜯거나
바람에 움직이는 커텐 끝자락을 물어뜯거나 하는 것 역시
따로 훈련을 통해서 배운 것이 아니다.
가끔은 오히려 뭉치나 꼬리가 날 길들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어떻게든 뭉치와 꼬리가 스트레스 없이 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편안하고 행복하게
우리와 함께 지낼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내가 뭉치와 꼬리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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