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6일 수요일

100만 번 산 고양이

유아그림책 중에서 <100만 번 산 고양이>란 책이 있다.



                                                                          <출처: yes24>


백만 년이나 죽지 않은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백만 번이나 죽고 백만 번이나 살았던 것이죠.
정말 멋진 얼룩 고양이였습니다.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를 귀여워했고,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가 죽었을 때 울었습니다.
고양이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습니다. (2쪽)

한때 고양이는 누구의 고양이도 아니었습니다.
도둑고양이였던 것이죠.
고양이는 처음으로 자기만의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자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16쪽)

어느 날 하얀 고양이는 고양이 곁에서 조용히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고양이는 처음으로 울었습니다.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또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울었습니다.
아침이 되고 또 밤이 되고, 어느 날 낮에 고양이는 울음을 그쳤습니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 곁에서 조용히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그러고는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습니다. (28, 30쪽)


100만 번 산, 얼룩 고양이는
임금, 뱃사공, 어린 여자아이 등 많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수많은 경험을 했지만, 삶에 대해 만족하진 못했다.
누구보다 자신만을 사랑했던 100만 번 산 얼룩 고양이는,
자기만의 고양이가 되었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꼈다.
도둑고양이가 되었을 때,
예쁜 암컷 고양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던 얼룩 고양이는
유독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하얀 고양이에게 끌렸고,
항상 "난 백만 번이나 죽어 봤다고!" 라는 말을 하던 얼룩 고양이는
"네 곁에 있어도 되겠니?" 라고 물었다.
하얀 고양이와 사랑에 빠지고, 함께 하는 삶을 통해
자기 자신보다 더 소중한 것을 깨달았다는 얘기를
작가는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작가의 의도가 전달되긴 어려워 보인다.
지극히 평범한 6살짜리 아들래미는 이 책을 읽으면 온갖 질문을 한다.

뭉치는 고양이잖아.
뭉치도 백만 년 사는 거야?
백만 년은 얼만큼이야?
백만은 백하고 만하고 더한 거야?
그러니까 백원짜리하고 만원짜리하고 합하면 되는 거야?
아까 얼룩 고양이 말인데, 임금님하고 전쟁터 갔다가 죽었다면서?
그런데, 왜 또 배를 타고 다녀(뱃사공과 같이 지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책속의 고양이는 왜 자꾸 죽었다가 다시 나타나?
얼룩 고양이는 처음만 진짜 고양이고, 나중에는 유령(가짜) 고양이야?
꼬리도 백만 년 사는 거야?
고양이는 다 백만 년 사는 거야?
엄청나게 오래 사는 거지?
우리는 얼마나 살아?
그러면 뭉치랑 꼬리가 우리보다 더 살아?
뭉치는 할아버지 되면 털 색깔이 변해? 꼬리는?
아까 책에 나온 하얀 고양이는 왜 백만 년 안 살고 중간에 죽어?
그리고 얼룩 고양이는 왜 다시 안 살아나?
얼룩 고양이는 사람을 안 좋아해?
임금님도, 뱃사공 아저씨도, 할머니도, 여자아이도 안 좋아한다며?
그러면, 뭉치랑 꼬리도 나 안 좋아해?
고양이들끼리만 좋아하는 거야?
그럼 뭉치는 나보다, 엄마보다 꼬리를 더 좋아하는 건가?
근데 별로 안 친해보이는데....
아... 뭉치도 이 얼룩고양이처럼 자기만 좋아해?
근데, 뭉치는 도둑고양이는 아니잖아.
뭉치랑 꼬리한테 여자고양이를 데려다 줘야 하는 거야?

끝도 없다.
이 책은 아이에게 매우 어려운 책인 것 같다.
사실 위의 질문에 대해 똘똘한 답변을 못하는 거 보면,
내게도 어려운 책임이 틀림없다.
불교의 윤회설이나 사랑의 의미를 바탕으로 해석한
다소 거창한 서평은 나한테는 별로 와 닿지 않는 것 같다.

다른 건 모르겠고,
난 그저 우리 뭉치랑 꼬리가 "백만 번"이나 죽고 다시 살아났음 좋겠다.
아니 자꾸 죽었다가 살아났다 할 거 없이
계속 건강한 상태로 내 옆에서 살았음 좋겠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얼룩 고양이처럼 '누구의 고양이'일 필요도 없고,
단 한 번도 '누구'를 좋아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냥 뭉치 자신만의 고양이로, 또는 꼬리 자신만의 고양이로
자기를 무척 좋아하면서 "뭉치답게" "꼬리답게" 살았으면 좋겠다.

가끔, 아주 가끔 내 곁에 와서 꼬리로 쓱 문지르고 가는 것이,
얼룩 고양이가 하얀 고양이에게 "네 곁에 있어도 괜찮겠니?"라고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하는 것처럼
엄마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는 게 뭉치만의 방식인 것 같다.
또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고 코로 제 손을 툭툭 건드리는 것이
"나 좀 쓰다듬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게
꼬리의 표현방식인 것 같다.

강아지와 달리,
어쩌다 가끔씩, 아주 드물게
고양이가 자기 스스로 엄마한테, 아빠한테 다가와 주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게
고양이 엄마아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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